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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일 신임 천안의료원장


이런 '바보 같은' 의사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4.14 14:11

 




[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흔히들 '바보'하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바보'도 있다.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자신을 희생해 대의를 따르는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허종일(42) 신임 천안의료원장에게 '바보 의사'란 별명이 제격일 것 같다.

지난 2001년 충남 태안군과 인연을 맺은 허 원장은 당시 의료 불모지인 태안군보건의료원(태안의료원)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면서 농어촌 지역의 의료현실을 체험한 후 공공의료에 대한 애착을 갖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 태안의료원장으로 재직했다. 태안이 고향도 아니고, 서울에서 전문의(고신대 의대 졸업, 가톨릭의료원서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 취득)과정을 거쳤지만 이곳을 선택했다.

태안의료원장을 맡아 전국 최초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을 신축하고, 요양병동 및 보호자 없는 병실, 호스피스 병동, 병원시설 증·개축 등을 이뤄냈다.

특히, 지난 2007 기름유출사고 당시엔 피해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의료지원과 유류성분 속의 유해물질로 주민들의 건강수준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중앙부처를 방문해 국비를 확보, 건강영향조사 사업을 시행했다.

또한, 태안의료원에 암 검진센터가 개설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 약속도 받아냈다.

그가 태안의료원장으로 부임한 초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병원과 태안의료원보다 의료 환경이 월등히 앞선 인근 의료기관 등에서 러브콜을 해왔지만 이를 다 포기하고 농어촌 지역 공공의료기관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또 다시 의외의 선택을 했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뒤로하고 다년간 발생한 적자가 100억 원대 넘는다는 천안의료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태안의료원의 원장실에서 마지막 직무를 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 충남 태안군을 떠나 천안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방금 연락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경쟁률(4:1)이 높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반가운 소식을 듣게 돼 기쁘다. 태안의료원장으로 역임하는 동안 물심양면 도와준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태안의료원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지난 2001년 4월 외과전문의를 획득하고 나서 태안의료원에서 공중보건의를 시작하면서 태안군과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태안의료원은 주민들의 기대 욕구에 크게 못 미치는 병원으로 외면당하고 공격당하는 기관이었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조차 의료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진료시설은 열악하고 입원실은 지저분해 스스로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니 도와준다는 사람이나 기관도 없었다. 산재한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외부로 돌리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병원 건물과 사람은 있되 실제는 죽어 있는 병원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누구 하나 찾는 이가 없는 불모지였다."

- 태안의료원을 의료불모지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시설의 원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을 끝내고 태안군으로부터 원장직 제의를 받았을 때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의료원장직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상당기간 공석이었다. 대학과 인근 의료원에서 오라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태안의료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도시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농어촌 지역의 의료현실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의과대를 다니면서 고민했던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태안의료원 생활을 하면서 더 애정이 생겼다고나 할까. 원장직을 역임하기엔 당시 조금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젊은 패기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 말처럼 그리 쉽게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당시 주변에서 허 원장을 '바보 의사'라고 부르는 이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고생 좀 했다. 나의 순수한 열정을 알지 못한 몇몇 사람이 그렇게('바보의사')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먼저 솔선수범해 시간을 쪼개어 가면서 의료원 활성화에 노력을 다했다. 진료 여건을 개선하기 주기 위해 간호사 인력 확충과 근무 여건을 개선했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을 직원들이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비로소 진료실의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수술실도 개원해 인근지역에서 최초로 복강경 수술을 도입하여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관리가 진료실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내시경, 초음파 장비도 교체하고 검진의 기회를 확대했다. 국비 확보를 통해 영상전송시스템을 구비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없이도 검사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모든 보건사업들을 행정적 실적위주가 아닌 현장에서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장중심 실적으로 바꾸었다. 지역 장애인·노인 복지관 및 여성회관 등과 함께 이동 복지관 사업을 주도해 지역의 새로운 의료모델인 총체적 복지사업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인지 시간이 흐르면서 '바보'라고 비웃던 사람들도 하나 둘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이것저것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부여하니 '바보 의사'란 별명도 이제는 참 좋다."

- 의료원장직으로 재직한 7년 동안 농어촌 지역의 공공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실시했다.

"주변마을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장례식장을 신축해 공공기관에서 공무원들이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장례식장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이 믿을 수 있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부담 없이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낙후된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의료원을 증개축해 진료 여건을 개선했다.

또한 의료원을 주로 찾는 환자들이 대부분 노인, 저소득층, 사회취약계층 등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요양병상들을 운영하고 지역 자활센터와 업무를 협력해 정기적 간병인 교육을 통해 간병인을 양성했다. 이를 통해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해 1년간 약 3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간병 부담을 덜게 됐다. 호스피스 병상도 운영하고 임종실도 만들었다. 호스피스 간호사를 양성해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최종 목표는 공공의료서비스 질적 향상"

- 지난 2007년 기름유출사고 당시에도 피해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애썼다.

"당시 전 직원을 동원해 비상진료팀을 구성하고 긴급 구호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유류성분속 다량의 유해물질에 무방비로 장기간 노출된 지역주민들을 위해 국비를 확보해 체계적인 건강영향 조사를 실시했다. 사고발생 초기만 해도 피해주민들의 건강관리는 뒷전이었다. 단순한 일회성 건강조사가 아닌 중장기 건강조사를 위해 모든 피해지역 주민들의 혈액과 소변시료를 저장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현재도 추적조사와 건강관리 상담은 진행중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마 가까운 시일내에 피해지역 주민들은 체계적인 암 검진을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검진 센터도 태안지역에 세워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열악한 응급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의 도움을 받아 태안의료원을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받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응급실 신축과 응급의학 전문의 확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 천안의료원장직 신청을 두고 지역에서 또 다시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주변의 지인들이 계속해 태안의료원장을 맡기를 권고했다. 고맙게도 이름 모를 한 주민은 원장실로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가지 말라'고 붙잡기도 했다. 그러나 천안의료원이 수년간 약 100억원대 이상의 적자 운영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태안의료원처럼 변화시키고 싶었다.

주변에서 '뭐하러 또 다시 사서 고생하러 가냐'며 타박하지만 내 최종 목표는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이다.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면 아무리 열악한 의료시설과 환경을 갖고 있는 곳이라도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이 조금이라도 질적인 향상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바보'가 되기를 자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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